[osen : a reporter Kim Soo Hyung] satirist on ‘Oh Eun-young gold piece of advice office.’ to appear early in the Ken and her younger brothers had to instead of their mother's death came up with a difficult childhood.It's the pain. and cheered for a lot of people to move briskly.
1st broadcast channel a the arts, ‘Oh Eun-young gold piece of advice office.’ satire featuring a transgender yutyubeoin on broadcast didn't do in so far to the agony.
Oh Eun-young, of the holic Walker The satire has concerns about gender identity to the family asked how the closet.Satire "Coming out three times.", first through the marginal man didn't mean like Outing found.Satire "At the time he smiled and he is, just as rebel." and said, "The second my father was crying so hard". Satire "she'll go back early, without his mother act as a mother saw father is recognized in my gender identity disorder." and "Third, when I talked later had a confrontation with a knife with your dad, aware of the severity." said all had to be shocked.
Satire "sex change operation after his father, and father said he would die than don't understand me.", he came out, more than 6 hours for a long time, and "to live with a woman, middle and keep what you mean () guns, you won't jab me with this knife and told me to go." that he adamantly denied the father and a knife in front of the conversation said.
풍자는 "아빠가 원한다면 평생 남자를 연기하며 살 수 있다, 아버지를 위해 아들로 살 순 있지만 그건 아빠를 위한 삶, 내 인생은 누가 살아주냐며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도 결국 여자의 풍자를 받아들이지 못 하셨다"며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집을 도망 나왔다고 했다.Satire "That's 19 and 20 years old, lost touch for 10 years since then." difficult and we bring her family.
Satire "In fact, social security number is not transformed yet again be the man, father and conflict law, I am afraid." said.Fortunately, the irony that he had now been reunited with his father.He came up with "One day, out of nowhere, father cries throughout the call to call Bob, I will give home in soybean paste stew, a word." and "Since then, the whole family 10 years after the family didn't recognize, father met each other, youngest adult, too, if he did this time I saw a lot older." high.Satire "awkward but is now doing well at the time." he added.
Oh Eun-young is carefully they would like to take daughter to my father asked.Satire is "Coming out is the first time, their oldest son was eldest daughter, not cry, popping. ' says father drank, and my son ’ ‘" and "When my oldest son was dead to me that, like anything missing.", came up with.Satire "My child, it's not change, but my son is dead I think I can, we will accept it." said.
Oh Eun-young, saying it was "you are much of your life can be determined, but the father won't be easy to accept it as his daughter work" said different kettle of fish with parental love.Father his child to express your love through their behavior even if the father daughter does not accept that it said.
Asked as the story of irony that as a mom in the house.풍자는 "막내가 3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 할머니가 삼 남매를 돌봐주셨는데 1년 만에 돌아가셨다"며 하필 아버지가 지방으로 일을 다닌 탓에 어린 삼 남매끼리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했다.Satire "wash kids and school and a baby blanket wrapped them around on his back." and came up with a teenager who have to live with a breadwinner and mother.
Even my father is working at home once in six months to one year only.The cost of living under 30,000 won per month, he said he used.Satire "when the use of oil boiler, oil can't spare the children slept with." and "bring awareness with younger siblings, neighbors and preparation materials for help." said it will never lie.When asked about a satire was a state of shock and said, "village elders is mold it provided a meal there were a man or bad food.", saying it "Malnutrition is the youngest at dinner, situations that were not resolved is no food, clothing and shelter".
Satire, " who have no parents, made fun of brothers who were knocked down, I wonder why I my brother all right if you hear this sound to listen?Every day I tried to please. poor "and" Younger siblings are not poor to do every day the idea, said everybody's tears.
The little to do the work had limited circumstances.Age need protection when we had to protect younger siblings in the satire. 오은영은 “부모의 마음, ‘마더링’이란 역할을 했다”며 “굉장히 마음이 아프다, 누구를 원망하기도 삶의 끈을 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가슴 아파했다. 풍자는 “그때 감정은 설명이 안 된다 , 어떻게 살았지? 싶다”며 “가출해서 모든 걸 다 내려놓으려 하다가도 내가 없으면 동생들에게 방어막이 없을 것 같아 버텼다”고 했다.
풍자는 “어느 날 남동생이, ‘네가 어른이란 이유로 혼자 참고 있는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너는 내 엄마고 아빠’라는 글을 써줬다”며 처음 받아본 동생의 진심어린 편지에 눈물, 풍자는 “내가 동생들을 헛되이 키운게 아니었구나 느꼈다, 어릴 때 힘든 것이 남동생의 편지 하나로 다 끝났다”며 눈물을 훔쳤다.
일을 안하면 왜 불안한지 이해하기 시작한 오은영은 “어린 나이에 경험한 가난, 동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열심히 일했을 것 같다”고 했다. 풍자는 “너무 기본적인게 안 되던 상황, 어린 동생들이 힘든 삶을 겪은 것이 속상한 마음. 저는 다시 옛날이 찾아와도 두 번 겪을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동생들은 안 겪었으면 하는 바람, 동생들이 앞으로 편하게만 지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고생하더라도 동생들은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전했다. 풍자는 “일을 안 하면 불안하다, 다시 (가난했던) 옛날로 돌아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오은영은 “풍자는 타인을 잘 돌보지만 ‘나’ 자신을 잘 못 돌보고 있다”며 나의 삶보다 타인의 삶을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하느라 집에 자주 못 온 아버지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었는지 물었다. 풍자는 “없었다”며 “잘 못 입고 못 먹는 삼남매보면 아버지도 속상했을 것”이라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없다고 했다.
이에 오은영은 “그건 아버지와 자식의 위치가 바뀐 말, 부모에게 받는 사랑과 보호, 위로 등이 있어야하는데 못 받으면 구멍이 생긴다”며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인정하고 직면해야 자신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했다. 상처를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회복과 성장할 수 있는 내면의 성숙이 있을 거라는 것.
오은영은 “때로는 서운함과 원망들의 감정도 생기지만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를 직면하지 못하고 있다, 원망의 마음을 부정하는 건 반동형성이라고 한다”며 아픈 과거를 직면하지 못하면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깊은 진짜 속마음을 살펴보지 못한 것이라 말했다. 풍자는 “생각해보니 한 번도 그런 얘길 해본 적이 없다”며 한 번도 힘든 것을 표출해본 적 이벗다고 했다.The irony of a difficult childhood when it's normal.
That's a tough one for satire, asked.You asked what my mother is what satire is "The house was being scammed, she died and who killed himself as a shock" said surprised everyone.Satire " It was not something you no longer received treatment at the hospital.Hand in the hospital can't just to spend time with family at home. 당시 병원에서 피부로 옮을 수 있다고 해서 동생들은 교회 목사님께 맡겼고, 홀로 어머니를 간호를 했다"라고 회상했다.
옮는다는 말에 오은영 박사는 "혹시 제초제를 드셨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풍자는 그렇다고 했다. 이에 오은영은 안타까워하며 "제초제는 그걸 마시면 결과적으로는 폐에 문제가 생겨서 호흡 곤란으로 돌아가시게 된다. 대체로 농약 마시면 응급실에 가면 위 세척을 하는데 제초제는 워낙 독해서 토사물로 나와도 그게 다른 사람에게 흡수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어머니의 사고를 홀로 감당했다는 풍자. 그는 “제가 임종까지 다 봤다, 방 한칸에 문을 걸어 잠그고 엄마랑 둘이 있었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주일간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풍자는 “혹시 내가 자는 사이 어떻게 되실까봐 자본 적이 없다”며 “제가 잠을 잤을 때 어머니가 농약을 드셨던 것, 어머니 빈소에 앉았는데 내가 왜 하필 그때 잠을 잔 걸까, 내가 만약 잠들지 않았더라면 뺏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본인 탓이라 자책했다. 죄책감에 편하게 잠들지도 쉬지도 못했던 것.
오은영은 “그게 풍자씨 탓이 아니다”며 다시 가난으로 돌아갈 까 불안해하는 풍자에게 “가엾어라..”라며 결국 눈물을 훔쳤다. 풍자는 “모든 행동이 다 죄 스럽게만 느껴졌다”며 평생을 죄책감과 불안함 속에 삶을 전했다. 특히 풍자는 “어머니 돌아가신 후 산소에 한 번도 가지 못 했다, 돌아가시고 나서 지금 제 모습을 못 보셨기 때문, 더 못 가겠더라”며 속마음을 꺼냈다.
오은영은 “마음의 준비가 되면 어머니 산소 뵈러 가셔라, 어떤 모습이든 자식으로 반갑고 보고싶어하실 것”이라 위로했다. 풍자는 “한 번도 엄마가 보고싶고 그립단 생각 안 했는데 얘기하니, 보고싶긴 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오은영은 “내면이 단단해져서 아픔을 마주할 날이 올 것, 오늘이 작은 시작”이라며 “풍자야, 이제 나를 좀 품자”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뎄다. 이어 오은영은 풍자의 본명인 “보미야”라고 부르며 “지금까지 꿋꿋하게 잘 살았어, 주변에서 뭐라고 말하든어떤 시선으로 대하든, 열심히 살아가는 것 자체로 귀하고 소중해, 건강을 돌보고 자신을 너무 아프게 하지마라”며 “건강해야 주변에 소중한 사람도 잘 돌볼 것”이라 위로했다.
풍자는 “너무 마음 고생이 많았다 보미야, 애썼어”라며 어린 풍자에게 전하는 위로를 전했고,풍자는 결국 “너무 힘들다, 죄송해요”라고 말하며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다.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 울음에 모두 같은 마음으로 눈물을 훔쳤다. 풍자는 “ 엄마가 살아계시면 나한테 이런 말을 해줬겠구나 싶었다”며 눈물의 이유를 전해 모두를 먹먹하게 했다.
풍자는 마지막으로 “명성 그대로인 오은영 박사님, 이렇게까지 제 얘기 풀어본 적 없다”며 “출연 전 고민의 해답을 찾으려했는데 과정과 답이 아니었다, 그 답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애써 외면했던 나를 만난 느낌”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다소 어려운 얘기를 진솔하게 해준 풍자, 이젠 아픈 것은 잊고 꽃길만 걷길 모두가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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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